나의 말들은 자꾸 줄거나 또 다시 늘어나
— 브로콜리 너마저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무언가를 소리내어 읽어주기로 결심한 건 연애를 하던 때였다.

공감지향 ‘죽음’ 첫째주

지난 주말에는 얼마전 미국에서 들어오신 넷째 할아버지 병문안을 갔다. 오래 전부터 미국에 계셨기 때문에 아마도 그 때가 처음 뵙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나와 내 동생 소개를 하고, 상태는 괜찮으신지, 병원에선 뭐라고 했는지, 다른 가족 분들은 언제 오시는지 물어봤다.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서 인사만 드리고 얘기만 들었다. 그리고 이번 목요일 밤에 넷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부고도 듣고, 장례식장에도 몇 번 가게 되었는데, 참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나와 오랜 세월을 지냈던 사람의 죽음을 겪지 않았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텐데 어떻게 될지, 어떤 기분일지, 어떻게 견뎌낼지 모르겠다. 내게 있어 죽음은 이런 불안감이 가장 큰 것 같다.

이런 불안함하고, 조금은 먼 죽음을 경험했던 일들을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친구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장례식장에 갔던 것 같은 내 불안함을 구체화시키는 경험들.


사실 혜화반에서도 한 번 죽음에 대한 얘기를 했어서 머릿속에서 좀 정리가 되어있는 주제다. 아Q정전에 대해선 무슨 얘기를 해야될까.

취미와의 거리

지난 목요일에 썼던 글. 발제문이라기 보다는 왜 책을 안 골라왔는가에 대한 글이네요.

다음 주 월요일까지 ‘사랑’에 관한 책을 하나 골라서 발제문을 써야 한다. 근데 ‘사랑’하니까 떠오르는 책이 없다. 책이 아니라 영화나 시도 되는데 그래도 마땅한 게 없는 것 같다. 새삼스럽게 사랑과는 너무 멀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책, 영화, 시와 멀어진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읽은 책 중에 사랑 얘기를 할만한 것은 김연수의 소설들인데 사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뿌넝쉬’. ‘세계의 끝, 여자친구’ 같은 것이 기억나는데 그렇게 끌리진 않는다. 지난 번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가져가서 김연수를 피하고 싶기도 하고. 교양 수업 때 읽었던 독일 명작들 중에서도 사랑에 대해 기억나는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영화는, 정말 요새는 영화를 안 보게 되었는데, 특히 사랑 영화는 볼 일이 없었다. 그나마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앞부분 좀 놓치고 본 것? 집에 있는 시집 몇 권을 뒤져봄다면 뭔가 찾아낼 수도 있겠지만, 괜찮은 시도 떠오르지 않았다.

근데 사랑 노래는 너무 많아서 어떤 노래를 골라야 할지 고민될 정도였다. 노래라면 정말 세세하게 주제를 나눠서 고를 수도 있다. 내 이별과 너무 닮은 노래, 이별하고 나서 위안이 되었던 노래, 사랑의 모습들을 나열하는 노래, 사랑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가진 노래, 내가 추구하려는 사랑을 얘기하는 노래 등등. 거기에 혜화반 4월의 연인에서 골랐던 사랑의 과정에 있는 노래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이 고를 수 있는 각양각색의 이별 노래들도 얘기할 수 있다.

그래서 노래들을 가지고 가야겠다. 뭔가 공감지향이 아니라 혜화반을 하러 가는 느낌이 들지만, 상관없겠지. 다른 사람들도 쉽게 미리 들어볼 수 있을 거고.


미리미리 다음 주제에 대비를 해보자면, ‘죽음’에는 윤동주 평전이 떠올랐다. 다시 뒤져봐야겠지만 마지막 부분에는 죽음을 앞두고 했던 생각, 썼던 시들이 있을 것 같다. ‘행복’에 대해서는 얼마 전에 산 ‘오무라이스 잼잼’이 좋겠다. 이 책은 가족 다 같이 보면 좋겠다 싶어서 샀는데, 수많은 웹툰 중에서 가족 모두가 재밌게 볼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다.

John Mayer - Love Is A Verb

Love is a verb
It ain’t a thing
It’s not something you own
It’s not something you scream

When you show me love
I don’t need your words
Yeah love ain’t a thing
Love is a verb
Love ain’t a thing
Love is a verb

Love ain’t a crutch
It ain’t an excuse
No you can’t get through love
On just a pile of IOUS

Love ain’t a drug
Despite what you’ve heard
Yeah love ain’t a thing
Love is a verb
Love ain’t a thing
Love is a verb

So you gotta show, show, show me
Show, show, show me
Show, show, show me
That love is a verb

Yeah you gotta show, show, show me
Show, show, show me
Show, show, show me
That love is a verb

Love ain’t a thing
Love is a verb

crutch: 버팀목

공감지향 ‘사랑’ 둘째주

이번 주에는 소유적인 사랑과 존재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일이 두 가지 있었다. 월요일에는 혜화동 9시반에 익명의 사연이 하나 왔다. 여자친구와의 첫만남을 서술했던 지난 사연에 이어지는 사연이었다. 사연을 보내고 나서 지금까지의 만남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그 뒤로 몇 편을 더 썼다고, 그걸 여자친구에게 메일로 보내주다가 결국에는 비밀 블로그를 만들어 서로 올리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혜화동 9시반 48회 ‘아날로그’에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hyehwa930.iblug.com/index.jsp) 이 사연을 받고 나서 한때는 나도 연인과의 비밀 블로그를 만들었단게 떠올랐고, 아직 지워지지는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연애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은 걸까, 이 것은 소유적인 건가 존재적인 건가 궁금해졌다.

얼핏보면 기억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이 것은 소유 양식이며, [소유냐 존재냐]에서 지적한 것처럼 기억을 머릿 속에서 떠나보내는 과정으로 보인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종이 위에 옮겨놓음으로써 나는 그 정보를 소유하기에 이르며 — 그것을 머릿속에 새겨놓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의 기록이 “기계적인” 기억이 아니라 “일찍이 보았거나 들었던 것을 소생시키는 것”과 비슷하다면 이는 존재적인 것에 가까울 것 같다. 특히 혼자만의 기록이 아니라 연인과의 소통을 거친다면 소유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 사연에서는 비밀 블로그를 만들어 서로의 글을 보고 싶었던 이유 즉, 소통을 하고 싶었던 이유를 이렇게 썼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여자친구가 기억하고 있다면, 그 날은 어떤 날일까 하는 설렘. 내가 기억하는 그 날을 여자친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

그래서 이런 ‘우리 사랑의 역사’가 낭만적이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헤어진 후에는 이 것들이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다. 헤어진 이후에 사진, 선물, 기록 등등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그 것들에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가 소유적인 사랑이었는지 존재적인 사랑이었는지를 판가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두번째는 강도하 웹툰 ‘위대한 캐츠비’를 정주행한 것이었다. 최근 연재 중인 ‘아름다운 선’을 보면서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추천을 받은 김에 주말에 다 읽었다. 확실히 그런 반전이 있었으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예전에 봤을 때는 중간까지만 보다가 말았던 것 같다. 이 글에서 직접적으로 스포일 하지는 않겠지만, 읽고나면 어떤 추측을 하게 될 것은 같으니까 안 읽은 사람은 더 이상 안 읽어야 할 것 같다. 그 반전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라서 정주행을 통해 발견했음 좋겠다.

결국에 ‘위대한 캐츠비’의 큰 주제 중에 하나는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가’인 것 같다. 모든 남성 캐릭터들은 사랑을(여자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여성 캐릭터들은 여기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많은 캐릭터들이 자신의 잘못에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결말도 좀 무책임한 것 같고.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랑의 모습들이 다양한 소유적 사랑을 보여 준다. 소유적인 사랑이 뭐냐 하면 이 작품에서 하나 고르면 될 것 같다.

그 대척점에서 강풀의 만화가 존재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순정만화 시리즈들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당신의 모든 순간) 근데 본 지가 오래되서 확신을 갖고는 못 말하겠다. 어쨌든 강도하 만화의 인물들과는 많이 달랐지.

웹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좋은 사랑의 구체적인 예로는 ‘결혼해도 똑같해’에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결똑을 보아보면 많은 에피소드에서 두 사람이 많이 다르고,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어떻게 인정하고 서로 맞춰가는지 잘 나온다. 분명 나도 누구를 만나든, 누구와 결혼을 하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그 것을 극복하면서 살아가야 할텐데, 결똑을 잘 봐두었다가 실천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공감지향 - ‘사랑’ 첫째주 <소유냐 존재냐>

'사랑'이라는 주제에 선택된 책이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라는 것은 뜻밖이었다. <소유냐 존재냐>가 에리히 프롬의 사상을 대표하는 책이지만, 사랑이라면 <사랑의 기술>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의 기술>은 이미 읽었던 책이고 집에 있었기에 <사랑의 기술>이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다.

그래도 새 책을 읽는 것은 재미가 있었고, ‘사랑’이라는 주제 때문에 책의 많은 부분을 건너 뛰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서론에서 모두가 행복할 줄 알았던 현대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얘기한다. 1부와 2부에서는 이 사태를 이해하고 해결하는데 중요한 ‘소유’와 ‘존재’에 대해 살펴본다. 1부에서는 일반적인 개념과 일상적 경험에서의 소유와 존재를 다루고, 2부에서는 근본적 차이에 대해 분석한다.

난 아직 1부까지 읽었는데, 3부는 안 읽어도 될 것 같다.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를 소개하는 것은 ‘사랑’ 이야기 보다 더 큰 이야기라서 나중에 읽어도 될 것 같다. 1부의 3절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그리고 에크하르트 수사의 저술에 나타난 소유와 존재”도 건너뛰었다. 이 책에서 가장 긴 제목인 것 같은데, 이만큼이나 조사해봤지 싶은 주장의 완결성을 위한 부분인 것 같아서 나중에 봐도 될 것 같다.

1부까지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1부 2절의 마지막 부분이다. 2절에서는 학습, 기억, 대화 등의 일상 경험에 대하여 소유와 존재가 어떻게 다른지 쉽게 설명한 부분인데, 그 마지막은 ‘사랑’이다. 네 페이지 밖에 안된다. 프롬이 ‘사랑’에서의 소유와 존재의 차이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옮겨보면서 정리해봐야겠다.

사랑은 실체가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고, 사랑의 행위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사랑에서의 소유는 ”사랑하는 대상을 구속하고 가두며 지배함을 의미한다.“ 이런 사랑을 “질식시켜서 죽이는 행위”라고 표현하면서,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를 예로 들고 있다.

”사랑에 빠짐으로부터 사랑을 소유하고 있다는 환상으로 변해가는 과정”

“(구애를 하는 기간에는) 아직은 어느 쪽도 상대방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양측 모두 존재적 측면에, 다시 말하면 상대방에게 무엇이든 베풀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데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결혼과 더불어서) 이제부터는 그 어느 편도 상대방의 마음을 사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제 사랑은 소유하고 있는 무엇, 하나의 재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결혼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그들은 흔히 변해버린 관계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으려고 들며 자신은 속았다는 느낌에 젖는다.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점은 두 사람 모두 서로 사랑에 빠졌던 그때와는 이미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사랑을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그릇된 기대감이 결국 사랑을 정지시켰다는 사실이다.” (“서로를 조율하며 서로 사랑하는 대신”)

음. 네 페이지 밖에 안되니까 구체적인 얘기는 안 나오는 것 같다. 특히 연애에 있어서 소유와 존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모임에서 얘기해 봐야할 것 같다. 근데 잘 기억이 안 나네. 다른 사람들 얘기 들으면서 내 기억도 떠올려보고, 내 얘기하면서 나는 소유하였나 존재하였나 얘기도 들어봐야겠다.

이제 남은 시간동안에는 소유와 본질의 근본을 다루는 2부를 읽으면서 더 깊이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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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지향 - ‘운명’ 둘째 주 후기

6시에 홍대에서 만나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시간이 좀 남아서 카페에서 시간 좀 보내고 가려 했지만 홍대 카페에 가 있기는 싫었다. 한강을 건너기 바로 직전 당산 역에서 내렸다. 한강 방향으로 당산 철교를 따라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어서 쭉 걸어갔다. 한강과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탁 트인 풍경을 구경하면서 월요일의 여유, 자유를 만끽했다.

다른 출구로 나와서 어딘가 카페가 있겠지 하며 걸어갔다. 카페에서는 민트초코를 시켰는데 생크림과 토스트를 서비스로 줬다. 좀 있다 저녁먹을텐데 싶었지만 배도 고팠기 때문에 다 먹었다. 그러고는 혜화반 지난 에피소드들에서 편집했던 부분들을 뒤지며 재밌는 부분을 옮겨놨다. 미방분 찾아놔야할 에피소드가 10개 넘게 밀려있었지만, 그리 급한 일은 아니었다.

시간 맞춰서 카페를 나와서 홍대입구에 갔다. 같이 저녁 먹기로 한 정윤 씨가 좀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아까 먹은 토스트 때문에 늦게 먹는게 더 좋아서 기다려도 괜찮았다. 만나서 저녁먹고 모임 장소까지 가는 동안 어색어색한 분위기였지만, 내 기준으로는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나만 후기도 쓰고 발제문도 써왔다.ㅎㅎ 근데 말은 제대로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운명’에 집중하다보니 지난 주보다 얘기가 어려워졌고, 내 생각도 스스로 정리가 잘 안된 상태였다. ‘운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민하다보면 혼란스러워져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뇌와 마음’ 수업시간에 들었던 결정론에 대해 얘기하고, 나도 잘 모르겠는 결정론을 어쩔 수 없이 믿으면서 자유의지는 있는 것처럼 산다는 내 입장을 말했다. 그리고는 주로 두 분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다만 마지막에 나올 때는 좀 우울해졌다. 다음 날이 연구실에 출근하는 실질적인 월요일이어서 연구와 진로에 관한 고민, 스트레스들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운명에 대해서도 갈피를 못 잡는 것 같고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어차피 둘 다 마주쳐야 하는 문제들이니까 혼란스러운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일주일이 지나 모임을 앞둔 지금은 우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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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핑퐁'

예전에 비공개 커뮤니티에 썼던 글인데, 공감지향에서 소개하기 위해 옮겨와 봅니다. ‘브로콜리 너마저’, ‘가을방학’, ‘언니네 이발관’의 노래들을 알고 계시면 좀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거에요.

대학국어 시간에 서평을 쓰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책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핑퐁’이었다. 지금은 두 소설의 작가가 ‘김연수’와 ‘박민규’이고 21세기 한국문학에서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작가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 때문에 제목만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당연히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선택했다. 그 때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수업을 들어야했기에 좀 외롭기는 했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핑퐁’ 이라는 제목이 있다면 작가가 누구든 얼마나 재밌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수강생들도 그들이 누구든 얼마나 잘하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많이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소설을 선택한 것은 나뿐이었다. [1]

제목만 놓고 본다면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과 ‘졸업’ 중에서는 ‘사랑하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를 선택하야 하고,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와 ‘동거’ 중에서는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를 선택해야 하며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와 ‘나는’ 중에서는 ‘너는 악마가 되어가고 있는가’를 선택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느냐 ‘졸업’과 ‘동거’와 ‘나는’을 선택하면 문장도 짧아지고 좋지 않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건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당연함인 것 같다. 당신이 이해하려 했지만 이해할 수 없다해도 어쩔 수 없다.

[1] 아마 대부분은 ‘책이 무엇이든 얼마나 재밌든’ 페이지 수가 적다는 이유로 ‘핑퐁’을 선택했던 것 같다. (260쪽 < 392쪽) 결국 서평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대해 썼지만 토론은 다른 수강생에 맞춰 읽지도 않은 ‘핑퐁’을 해야했다. 그게 아니면 강사와 개인 토론을 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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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지향 - ‘운명’ 둘째 주에 얘기하고 싶은 것들

미리 정리해놨어야 했는데, 지난 주 모임 마무리하면서 다음주에 이런 얘기를 해보자고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는 주로 소설 속의 ‘뫼르소’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떤 점에서 공감하고 공감하지 못하는지 등등을 얘기해봤다면, 왜 알베르 카뮈는 이런 인물을 만들어냈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풀어냈는지에 대한 얘기들. (분명 전자와 후자를 멋있게 부르는 전문 용어가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 또 카뮈에게 노벨 문학상을 준 이유는 뭘까 같은게 궁금하다. 이런 다른 차원의 얘기들을 해보고 싶다. 내가 할 자신은 별로 없지만.

주변 인물에 대해서는 마리가 대체 왜 뫼르소를 좋아할까 하는 얘기가 있었고, 왜 앞에 나왔던 인물들이 재판장에서 증언할 때 뫼르소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을까하는 이야기를 했었다. 또 다른 인물들에 대한 얘기도 더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방인에서는 특히 1부에 나왔던 인물들이 2부에 재등장한다는 점에서 각 인물에게 주어진 역할이 뚜렷할 것 같아서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중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도 더 이어나가고 싶다. 운명적인 사람, 운명적인 일들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우리가 생각하는 운명적인 일은 "희박한 확률로 일어날 일인데 일어나서 신기한 일"(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 놓은,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의 나를 상상하기 어려운 일” 정도로 모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원래 운명이라는 건 원래부터 정해져있는 이니까 운명을 믿는 사람이라면 일상적이고 작은 일도 다 정해져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해야되는게 아닐까. 또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매우 낮은 확률의 삶에서 중요한 일이라도 우연이라고 생각해야하는게 아닐까. 그러니까 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운명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운명을 믿든, 안 믿든, 그 어느 중간이든)에 대해 얘기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예전에 들었던 ‘뇌와 마음’ 수업에서 결정론과 비결정론 그리고 자유의지에 관한 얘기를 했었는데 다 운명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근데 그 때 들었던 내용이 잘 생각이 안 나서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래는 모임 가면서 읽어볼 것들

알베르 카뮈 노벨문학상 수상연설문 - 1957년 10월 17일 스웨덴 연설

http://www.goodnadri.net/bbs/view.php?id=speech&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desc&no=16&PHPSESSID=1297c5234613ebcb97133c7bb290e6c2

알베르 카뮈 -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95%8C%EB%B2%A0%EB%A5%B4_%EC%B9%B4%EB%AE%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