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소유적인 사랑과 존재적인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일이 두 가지 있었다. 월요일에는 혜화동 9시반에 익명의 사연이 하나 왔다. 여자친구와의 첫만남을 서술했던 지난 사연에 이어지는 사연이었다. 사연을 보내고 나서 지금까지의 만남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그 뒤로 몇 편을 더 썼다고, 그걸 여자친구에게 메일로 보내주다가 결국에는 비밀 블로그를 만들어 서로 올리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혜화동 9시반 48회 ‘아날로그’에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http://hyehwa930.iblug.com/index.jsp) 이 사연을 받고 나서 한때는 나도 연인과의 비밀 블로그를 만들었단게 떠올랐고, 아직 지워지지는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연애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은 걸까, 이 것은 소유적인 건가 존재적인 건가 궁금해졌다.
얼핏보면 기억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이 것은 소유 양식이며, [소유냐 존재냐]에서 지적한 것처럼 기억을 머릿 속에서 떠나보내는 과정으로 보인다. “기억하고 싶은 것을 종이 위에 옮겨놓음으로써 나는 그 정보를 소유하기에 이르며 — 그것을 머릿속에 새겨놓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의 기록이 “기계적인” 기억이 아니라 “일찍이 보았거나 들었던 것을 소생시키는 것”과 비슷하다면 이는 존재적인 것에 가까울 것 같다. 특히 혼자만의 기록이 아니라 연인과의 소통을 거친다면 소유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게 된다. 그 사연에서는 비밀 블로그를 만들어 서로의 글을 보고 싶었던 이유 즉, 소통을 하고 싶었던 이유를 이렇게 썼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여자친구가 기억하고 있다면, 그 날은 어떤 날일까 하는 설렘. 내가 기억하는 그 날을 여자친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
그래서 이런 ‘우리 사랑의 역사’가 낭만적이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헤어진 후에는 이 것들이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다. 헤어진 이후에 사진, 선물, 기록 등등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그 것들에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가 소유적인 사랑이었는지 존재적인 사랑이었는지를 판가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두번째는 강도하 웹툰 ‘위대한 캐츠비’를 정주행한 것이었다. 최근 연재 중인 ‘아름다운 선’을 보면서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추천을 받은 김에 주말에 다 읽었다. 확실히 그런 반전이 있었으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는데, 예전에 봤을 때는 중간까지만 보다가 말았던 것 같다. 이 글에서 직접적으로 스포일 하지는 않겠지만, 읽고나면 어떤 추측을 하게 될 것은 같으니까 안 읽은 사람은 더 이상 안 읽어야 할 것 같다. 그 반전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라서 정주행을 통해 발견했음 좋겠다.
결국에 ‘위대한 캐츠비’의 큰 주제 중에 하나는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가’인 것 같다. 모든 남성 캐릭터들은 사랑을(여자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여성 캐릭터들은 여기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많은 캐릭터들이 자신의 잘못에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결말도 좀 무책임한 것 같고. 나오는 거의 모든 사랑의 모습들이 다양한 소유적 사랑을 보여 준다. 소유적인 사랑이 뭐냐 하면 이 작품에서 하나 고르면 될 것 같다.
그 대척점에서 강풀의 만화가 존재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순정만화 시리즈들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당신의 모든 순간) 근데 본 지가 오래되서 확신을 갖고는 못 말하겠다. 어쨌든 강도하 만화의 인물들과는 많이 달랐지.
웹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좋은 사랑의 구체적인 예로는 ‘결혼해도 똑같해’에 많이 나오는 것 같다. 결똑을 보아보면 많은 에피소드에서 두 사람이 많이 다르고, 서로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어떻게 인정하고 서로 맞춰가는지 잘 나온다. 분명 나도 누구를 만나든, 누구와 결혼을 하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그 것을 극복하면서 살아가야 할텐데, 결똑을 잘 봐두었다가 실천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